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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처럼 나도 '노예' 아닌 '인간'의 길 걷겠다

단비소리 2010. 4. 7. 12:47
김예슬처럼 나도 '노예' 아닌 '인간'의 길 걷겠다
[나의 선언] 신자유주의 무너지는데 서울대는 뭐하나
10.04.06 12:10 ㅣ최종 업데이트 10.04.06 12:10 진승모 (soundboy)

"이번 경제위기를 통해 (주류)경제학의 기본 가정들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됐다. 현실에 맞게 경제이론을 바꿔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에 없었다."

 

이것은 주류질서에 언제나 '반대'만을 외치는 좌파 경제학자의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첨병 세계은행IBRD의 부총재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제125회 전미경제학회 기조연설을 통해 발표한 자기고백이다.

 

"시장주의 주류경제학은 이론의 아름다움을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착각했다."

 

이것은 시장을 부정하는 어느 친북좌파 운동권의 해묵은 주장에 불과한가?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재작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 폴 크루그먼 교수가 시장만능을 외치며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가한 일침이다.

 

오로지 '시장!' '경쟁!' '효율!'만을 외치며 전 세계의 사회구조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삶 그 자체마저 장악해왔던 신자유주의 논리는 이제 그 주창자들에 의해 부정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들은 "이제 학생들에게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는 자조섞인 푸념을 늘어놓고, 세계적인 경제학 석학들은 자본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케인지언들이 노벨경제학상을 휩쓸기 시작했고, 독일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없어서 못팔 지경에 이르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했던 케인즈와 마르크스가 무덤 속에서 살아났다.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할 것은 오히려 신자유주의가 되어버렸다.

 

신화의 파산, 그리고 서울대

 

  
서울대 정문(자료 사진).
ⓒ 권우성
서울대

얼마 전 미국 역사상 최초로 '건강보험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였다. 이것이 단순히 '일국의 의료시스템 변화'만으로 바라볼 문제인가? 적어도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장만능을 외치던 미국마저 의료보험을 더 이상 '시장'에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현실에서 파괴되기 시작했음을 목도할 수 있는 상징적 사변이다.

 

미 공화당을 비롯한 수구세력들은 건강보험 개혁안을 두고 "사회주의 제도"라며 맹비난을 퍼붓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거꾸로 돌지 않을 것이다. 이제 '진실로' 세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한 변화가 아닌 '거대한 역사적 전환'이 될 가능성이 높다. 30여년간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몰락하고 신질서가 세워질 역사적 전환 속에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신화의 파산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드러난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 금융경제의 파산! 신자유주의 모범국으로 칭송받던 아일랜드의 파산! MB와 조선일보가 찬양해마지 않던 두바이 신화의 파산! 어느 기업이나 따라배워야만 했던 도요타 신화의 파산!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침튀겨가며 찬미했던 각종 신화들은 이미 파산했거나, 파산하고 있다.

 

파산하고 있는 건 신자유주의 신화 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절대진리로 떠받들던 '학문'들도 파산하고 있다.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선 교재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실토했고, 미국의 뉴욕대학 경영학 수업에서는 교재를 버리고 신문기사를 통해 경제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최고의 명문대라는 국립 서울대의 현실은 어떠한가? 서울대 경제학부의 30여명의 교수들 중 유일한 비주류 경제학자였던 김수행 교수가 퇴임하고, 경제학부는 김수행 교수 후임 대신 주류 경제학자를 채용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서울대의 모토는 이미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진리 탐구를 위한 학문의 다양성조차 무시하고 오로지 주류만을 쫓아 내달리던 경제학부는 이미 그 자체로 시대에 뒤떨어지고 낡아 빠졌다.

 

서울대 인문대 수업에서 강연한 한 CEO는 "기업에 돈 빌리는 접대자리에서 수치 얘기를 하는 것보다 인문학이나 예술을 전공한 직원이 노래나 한 곡 불러주는 것이 효과가 더 좋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농경제사회학부 역시 다를 바 없다. 농업경제학에 마르크스 경제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던 역동적인 모습은 이미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각종 경제학 수업 시간에 우리는 '죽은 지식'만을 전달받고 있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현실 속 사례들을 갖고 수업을 하기는커녕 현실과는 완전히 단절된 이론만을 일방적으로 주입당하고 있다. 농민들이 할복하고 몸에 불을 지르며 반대한 WTO와 한미FTA를 찬성한다는 우리 농업경제학 교수님들의 입장은 절망 그 자체이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지식인'이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학문적으로 떠받치고 떡고물을 받아먹는 존재라고 치자. 그렇다면 왜 서울대 교수들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고뇌를 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질서의 파탄을 지켜보면서도 대안을 마련하려 전전긍긍하지 않는가!

 

어찌해서 "우리가 가르치던 게 틀렸을 수도 있다, 함께 고민해보자"라는 솔직함조차 보이지 않는가! 안일하게, 너무도 안일하게 수십 년간 반복해온 '죽은 지식'만을 전달하는 기계적 수업, 용기도 부끄러움도 없는 교수님들을 보며 처음으로 '서울대'가 부끄러워졌다. "조국의 내일이 알고 싶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라!" 당신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은 구시대의 유물로 가득 쌓인 '무덤'일 뿐이다.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를 몰아내자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유성호
김예슬

 

김예슬 선언은 우리들 가슴에 분명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쳤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관련 기사의 댓글들은, 스누라이프(서울대 커뮤니티)에 종종 익명으로 올라오는 가슴 아픈 고백들은, 그리고 관악 곳곳에 붙은 대자보들은 그녀의 선언이 사실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자 아픔이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여전히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 숨쉬려 하는 서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고 난 뒤 난 다시 내일 1교시 수업을 준비할 것이다. 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아무런 주체적 생각도, 고민도, 비판도 없이 수업 내용을 필기할 것이다. 과제를 풀기 위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필기 내용을 달달 외울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젊은 날은 A로 가득찬 성적표로 보상받을 것이고, 졸업 후 높은 연봉으로 보상 받을 것이다.

 

매일 경쟁하고, 시험보고, 경쟁하고 시험보는 끝이 없는 서바이벌 게임. 16년이란 기나긴 학창 시절을 끝없는 경쟁으로 마감하면 취업과 직장생활이라는 또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겠지. 이러한 나의 청춘은 과연 푸르른가?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순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기계처럼 행해진 수업을 기계처럼 받아들인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서울대의 처참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그 처참한 현실의 부역자가 다름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노동자 말살하는 신자유주의 몰아내자!"

"서민경제 파탄내는 신자유주의 몰아내자!"

 

지난 날 소위 운동권 친구들이 외치던 저 구호에 물론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외치려 한다. 우리 뼛속까지 스며든 우리 안의 신자유주의를 먼저 몰아내자고. 그리고 우리의 학교 서울대 안의 잿빛 신자유주의를 몰아내자고.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경쟁'대신 '협력'을 해야하고, '분열'대신 '단결'을 택해야하며, '개인'대신 '공동체'를 위해야하고, '효율'대신 모두를 위한 '비효율'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상대평가제, 학사관리엄정화 등의 사소한 구질서부터 교육을 시장에 내맡기는 법인화, 고액등록금을 저지해야할 것이다. 진짜 학문, 진리 추구를 위한 대학교육의 커리큘럼 재편을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우리를 억압하는 사소한 질서와 제도는 물론이고 대학 전체와, 어쩌면 정권과도 맞서야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우리 모두가 신자유주의 질서의 피해자였음과 동시에 그것의 '부역자'였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것이다.

 

노예로 살 것인가? 꿈도, 청춘도 없이 더 나은 학점노예로, 더 높은 임금의 노예로. 그러나 서로 더 나은 노예가 되려 할 수록 대다수는 더욱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의 끝엔 더 살인적인 경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바늘구멍은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주인으로 살 것인가? 그렇다면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대다수가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나서는 순간 대학은 변할 것이다. 마치 68혁명 때 서유럽 대학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학은 다시 자유와 낭만, 평등과 사랑이 넘쳐날 것이며 진정한 학문탐구와 진리추구로 빛날 것이다. 그것은 대학의 변화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변하면 세상도 변할 것이다. 마치 지난 날의 서유럽 국가들이, 북유럽 국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질서,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의 질서로 세상이 재편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렸다

 

신자유주의라는 구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대안은 어디에 있는가? 새로운 질서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탄생될 것인가?

 

대안은 누군가 뛰어난 어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탄생되지 않으며, 새로운 질서는 특별한 누군가에 의해 세워지지 않는다. 구질서가 몰락하는 지금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 더 나은 행복을 위해 일어선다면 우리의 질서가 곧 신질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머뭇거린다면 아마도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던 지배층이 다시 그들의 질서를 세울 것이다. 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세계의 탄생.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대학. 참다운 '진리'를 나의 빛으로 여기며 즐겁게 학문을 배우는 대학.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되는 대학.

 

모든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김예슬을 비롯한 많은 대학생 친구들에게 용기를 얻어 나 역시 선언한다.

나 또한 우리를 억압하는 시스템의 부역자였음을.

 

그리고 다시 선언한다.

 

나 또한 노예가 아닌 인간의 길을 걸을 것을.

대학 안에서 내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나름의 방법으로 모든 구질서에 저항할 것을.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4학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