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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장동건 그리고 재벌 3세 / 김의겸

단비소리 2010. 1. 7. 13:44
그래 맞다 빠르게 문이 닫혀져 가고 있다. 한 번 잡으면 천년 만년이니 무슨 꿈을 가지고 무슨 가능성을 가지고 모험을 하고 기다리겠는가? 커지면 작아질 줄을 모른다. 많으면 나눌줄을 모른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사랑의교회가 2000억짜리 교회를 짓지 않는가? 문제는 나에게도 그런 많은 것들이 주어졌을 때 나도 똑같이 나누지 못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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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김의겸 문화부문 편집장
#5일치 조간 기사 하나-땀과 눈물.

“유해진? 눈이 와이셔츠 단춧구멍만한…. 아니, 김혜수가 뭐가 아쉬워서?” 김혜수의 마음을 훔친 사내가 유해진이라는 소식에 어이가 없었다. 연예 담당 후배 기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촌스러운 외모와 달리, 문학·클래식·순수미술 등 다방면으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단다. 사회 각 분야에 모르는 게 없어서, 만만하게 보고 달려든 기자들이 되레 주눅 든단다. 게다가 꾸준한 몸관리로 ‘초콜릿 복근’까지 가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그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기기 위해” 일부러 더 사람들 앞에 나섰고, 자기를 가꿔왔단다. 멋진 남자다. 그의 매력을 알아본 김혜수는 더 멋지다.

#5일치 조간 기사 둘-행운의 유전자.

몇몇 신문들은 내친김에 장동건-고소영 얘기도 전한다. 둘이 연초에 미국으로 함께 극비여행을 떠났다고. 그런데 고작 1단짜리다. 지난해 연예가 최대 뉴스였는데, 벌써 시들하다. 오히려 요즘 반응을 개그콘서트 식으로 얘기하면 “1등끼리만 사귀는 더러운 세상!”에 가깝다. 하지만 시샘도 거기까지다. 어쩌겠나, 천만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유전자 조합의 행운을 타고났는데. 떫지만 “생긴 대로 사는 거지”라며 받아들인다.

#5일치 조간 기사 셋-유전보다 질긴 세습.

경제면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이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실렸다. 맞고 온 둘째아들 때문에 직접 가죽장갑까지 끼셨던 분인데, 다른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계속되는 재벌가 3세들의 잔치다.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 등등. 다 세려면 발가락까지 꼽아야 한다. 그래도 예전에는 2~3세 문제로 여론의 눈치를 보거나 쉬쉬했는데, 요즘은 거리낌이 없다. 하긴 재벌 2세가 집권 여당 대표인데, 뭐 꿀릴 게 있겠는가.

그러나 이건 ‘장동건 같은 행운’으로 돌려버리기엔 사안이 심각하다. 장동건의 ‘미남 디엔에이(DNA)’는 몇대 못 가 희석되겠지만, 돈으로 쌓은 성채는 세습을 거듭하며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러다 먼 훗날에는 이씨왕조 518년 27대 임금처럼 재벌 27세라는 말도 나오겠다.





우리가 해방 직후 찢어지는 가난에서 벗어나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신분질서의 붕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조선은 망하고 일본은 패했다. 농지개혁과 6·25를 거치며 만석꾼이 알거지가 되고, 천출도 권력자가 됐다. 급격한 사회변동과 맞물린 계층상승은 우리 사회를 ‘역동적인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다. 방앗간 주인 이병철과 카센터 사장 정주영이 삼성과 현대를 일군 것도 그런 사회적 꿈틀거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요즘 ‘기회의 문’은 빠르게 닫혀 가고 있다. 얼마 전 ‘재벌닷컴’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20대 부자 가운데 부모 잘 만난 경우가 18명이고, 자수성가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11위)와 허용도 태웅 대표이사(17위) 2명뿐이었다. 반면 미국의 20대 부자는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자수성가가 15명이고, 유산 상속은 월마트 창업자 2세 등 5명이었다. 자본주의 최전성기를 지나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미국보다도 우리가 더 늙어버린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1790개 기업 가운데 자력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이 된 회사는 12곳밖에 안 된다는 통계도 있다. 0.67%다. 그만큼만 쥐구멍에 볕이 드는 셈이다.

이런 ‘애늙은이 사회’이기에 유해진의 사랑 얘기는 더한층 풋풋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조만간 결혼 소식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시는 분들은 부조들 많이 하시라.

김의겸 문화부문 편집장 kyummy@hani.co.kr